가네시로 가즈키의 GO, '원'을 뛰어넘는 '청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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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이 작품을 처음 만난건 2001년 겨울방학. 그때는 소설이 아니라 영화로서 접했다.이 소설 원작의 영화를 티비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소개해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멍하니 멍 때리면서 보고 있다가 점점 더 몰입하게 되었는데, 박동감 있는 영상도 영상이지만 나레이터가 영화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던지는 단어, 단어들이 기억에 더 남았다.

 

재일한국인, 자이니치, 마이너리티...

 

아마 그때 나는 처음으로 재일한국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됐다. 일본에 그렇게 많은 동포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일본사회의 유형·무형의 차별에 대해서도 처음 알았다. 이후에 소설로 다시 이 책을 접하면서, 이 책의 문장들이 뿜어내는 강한 생명력, 청춘의 열정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재일한국인이라는 독특한 존재가 단지 일본사회의 한 가지 사회문제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 역사의 일부라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시나 식민지 시대가 만들어낸 잔재이기 때문이다. 만약 조선이 패망하지 않고 근대화에 성공하여 부국강병을 이뤘다면 조선민족이 강제로,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해외로 민족이 이산되어버리는 디아스포라적 상황이 발생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와 반대의 가정으로 우리나라가 아직도 일본의 식민지 상태라면 지금의 한국인들 역시 조선계 일본인으로, 현재의 자이니치와 같은 상태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보더라도 이들의 존재는 식민지 역사를 지닌 민족의 거울인 셈이다.

 

 | 하와이, 귀화, 자본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배신자

 

 소설 얘기를 해보자.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스기하라는 14살때 아버지에게 충격적인 얘기를 듣는다. “하와이. 하와이로 가야겠어.”

 그러나 그는 조선국적. 쉽게 얘기하면 북한국적이였고, 북한여권을 받아서 갈 수 있는 나라는 극도로 적었다. “그래, 이참에 확 한국인이 되버리자. 나하고 엄마는 이미 한국 국적으로 결정했으니까 너도 빨리 결정해라”.

 이게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 하와이는 뭐고, 한국국적은 또 뭐란 말인가. 애시 당초에 이런말도 안되는 것들을 왜 14살 내 인생에서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스기하라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조총련 ( 조선인총연합, 재일한국인 중 조선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단체. 친북적인 성향을 갖는다 ) 소속의 조선인에게 남한이란 퇴폐한 자본주의의 상징이고 미제의 식민지 아니었던가. 암튼 이때까지 본인이 몸담고 있던 조총련 계열의 조선인학교, 그 친구들 모두를 배신하는 일이 된다고. 한국 국적으로 바꾸는 건.

 그러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수세미 선배. 수세미라는 별명은 그의 머리가 쇠수세미처럼 삐죽삐죽 날카롭게 곤두서 있어서 붙은 별명이다. 그는 조선학교의 소위 말해 짱이였다. 그는 전설이었다. 특히나 준족이라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일본 불량배도 경찰도 그를 따라잡지 못했다. 스기하라는 그런 선배의 뒷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뒤쫓아간다. 잡히지 않으려고. 그러나 결국엔 잡히고 말더라면서.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스기하라에게 선배는 말한다. “나, 결국 찍고 왔다, 지문.

 외국인지문등록제도. 자이니치는 잠재적 범죄자라서 일본 관청에 가서 미리 미리 지문을 등록해라. 안 하면 벌금 왕창 먹이고 감옥 보낼거야.라는 법. 그렇게 쓸쓸한 모습으로 수세미 선배는 떠나갔고, 나중에 들은 풍문으로는 한국으로 귀화하고 프랑스 외국인 부대에 갔다느니 네덜란드에서 히피들의 왕이 되었다느니 하는 뜬소문 같은 얘기들만 왕왕 듣게 되었다.

 중3. 결국 스기하라는 일본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 말인즉 한국국적을 취득하겠다는 말이다. 친구들로부터는 배신자라 찍혀 이제 같이 놀 친구도 없다. 마이너리티의 마이너리티가 되어버린 셈이다. 다만 정일이만 빼고(북쪽의 그 김정일 아닙니다 ^^ ). 정일이는 개교 이래 최고의 수재자라 불리는 녀석인데, 어쩐 일인지 공부와는 거리가 먼 싸움쟁이 말썽쟁이 스기하라랑 친하게 되어 공부도 가르쳐주고 영화도 보러가게 되었다. 이런 인연은 스기하라가 일본인 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도 계속 이어지게 된다.

 

| 수컷, 무패대행진, 그리고 여자, 그리고 상실감

 

일본학교에서 통명 즉 일본이름을 써서 불필요한 트러블을 피해보려했던 스기하라는 그러나 바보같은 학교 당국의 처사로 인해 금새 조선학교 출신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인들한테 조선학교란 대단히 ‘배타적인 가라테 수련도장’같은 이미지였기에 스기하라는 싸움꾼이자 쓰러뜨려야 할 목표가 되어버렸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대결을 벌여야했다. 하지만 주인공은 역시나 주인공. 죄다 드러눕혀 버리는 먼치킨 근성을 보여줘버리고...그런 대결에서 가토라는 아이의 코를 부러뜨렸다가, 코 부러진 김에 성형수술해서 기무라 타쿠야 같은 코를 가지게 되어 급방긋해진 가토라는 녀석과 친구도 먹게 되었다. 그러나 친구라고는 가토 뿐, 역시나 자이니치라는 벽은 두꺼웠다.

 가토의 생일 파티. 스기하라는 묘령의 여자와 만난다. 둘은 곧 사랑에 빠진다. 알콩달콩. 야한 짓도 많이 하고 말이지. 그런데 이 소설에서 정말 중요한 사건이 그쯤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이쯤에서 스포일러를 멈춰야되지 않겠나 싶은 필자. 담배 피러 갔다와서 다시 써야겠다.

 

| 원을 뛰어넘는 청춘이야기

 

이 소설의 제일 첫 페이지에 이런 말이 써져 있다.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불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

_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이 세상에 태어나보니 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일본이라는 나라에 태어나게 되었고 재일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차별받게 되었다. 나를 재일, 자이니치, 춍 뭐라고 부르던 간에 나는 나야, 라고. 내가 나로서 똑바로 서서 나한테 부당한 이름표를 붙이며 쑤근덕거리는 놈들한테 한방 먹여주는 소설이다.

 그리고 결국에 그것은 자신이란 인간의 크기. 스기하라의 아버지가 스기하라한테 팔을 쭉 뻗은 다음, 한 바퀴 빙글 돌아보라고. 그것이 너란 놈의 크기라고 말했던 그 좁아터진 구식 세계와 이별하고 이제는 진짜 나로서 선다. 그리고 뛴다. 도움닫기. 원을 넘어가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신났다. 나도 주인공처럼 되고 싶었기에. 답답한 현실, 거울 속에 나라는 바보같은 놈을 벗어나 멋있는 내가 되고 싶었기에, 그런 청춘이고 싶었기에...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보물이라 생각한다. 클래식(고전)이라 생각한다. 두고 두고 읽히게 되고 영화도 몇번이나 새로 다시 만들어지리라 본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내가 그렇게 해버리는 수가 있다. ( 장담은 못함 )

 어쨋거나 많은 우역곡절 끝에 스기하라와 그녀는 다시 만나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넘을 수 없었던 선을 과감히 넘어서서 서로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소설 중에 나오는 배경은 겨울인데, 한 겨울에 사랑하는 남녀가 맞잡는 손만큼 감미롭고 호떡처럼 달콤 따끈한 것이 있을까. 그렇게 그들은 앞으로 나간다. GO다.

 

GO - 10점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북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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