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일본 난학의 개척자 스기타 겐파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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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학? 난학이 뭐야?



난학은 에도시대 일본에서 서양학문, 엄밀하게는 네덜란드 학문을 일컬었던 단어다. 당시 일본은 유럽국가 중 유일하게 네덜란드하고만 교류하고 있었다. 덕분에 네덜란드를 통해서 서양사정, 서양학문들을 일찍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은 난학이란 학문의 시작단계에서 고군분투한 당대 일본 난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운명의 책, <타펠 아나토미아>가 <해체신서>로 거듭나다.



'난학의 개척자'였던 스기타 겐파쿠와 그의 동지들은 우연히도 독일의학서 <타펠 아나토미아>의 네덜란드어 번역본을 입수한다. 그리고 실제 형장에서 죄수의 해부현장을 참관하며, 실제 인체장기들과 <타펠 아나토미아>의 해부도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에 경탄을 마지 않는다. 이제까지 중국 한의학서에서 보았던 인체해부도는 엉터리였던거다.


해부 참관 후 귀가하는 길에, 그는 동지들과 이 책을 한번 번역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분명 후대 의학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틀림 없다. 동지들도 동의한다. 꼭 번역해내고야 말리라.



암흑천지에 까막눈, 장님



동지들이 매일 회합하여, 책의 번역에 착수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 첫날, 책상 위에 놓여진 <타펠 아나토미아>를 놓고 동지들이 둘러앉는다. 그러나 암흑천지에 까막눈, 장님이 된 기분이다. 스기타 겐파쿠는 그 참담한 심정을 회고록인 <난학사시>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책을 앞에 놓았으나, 마치 노와 키도 없는 배를 타고 망망대해에 나간 것처럼 갈피를 잡을 수도 없고, 기댈 곳도 없어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228p)


그도 그럴 것이 겐파쿠는 알파벳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회합의 최고 연장자이자 오란다어(네덜란드어)가 가장 뛰어났던 동지 마에노 료타쿠에게 알파벳과 기초적인 어학 공부를 하는 것으로 번역작업은 시작됐다.



허허실실 전법으로 네덜란드어 격파



번역작업은 정말 고단하고 힘들었다. '눈썹이란 눈 위에 나있는 털'이란 문장을 번역하지 못해 하루종일 끙끙댔다. 해부 의학서였기 때문에 각주도 굉장히 많았다. 그러나 각주까지 번역하다가는 어느 세월에 번역작업이 완료될지 알 수 없었다. 일단은 본문부터 번역하자. 후학들에게 서양의학의 대강이라도 알게끔하자. 속도를 내야한다. 


모르는 것은 일단 표시를 해놓고 넘어갔다. 번역해 나가다 보면, 더 지식이 쌓일 것이고 그러면 앞에 몰랐던 문장들도 자연스레 번역될 것이다.


미묘한 의미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나 잘 모르는 부분은 무리해서 정확하게 번역하려 하지 않고 다만 의미가 통하게만 써 놓았다. 예를 들어, 에도에서 교토로 가려고 생각한다면, 우선 도카이도와 도산도란 두 길이 있는 것일 안 뒤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면 결국 교토에 도착한다. 그런 생각으로 일반 의사들을 위해 오란다 의학의 근본을 설명해 주는 것이 이 책을 번역하는 취지라고 생각했다. (238p)




그들의 노력이 존경스럽다.




타펠 아나토미아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본어로 번역이 마땅치 않은 몇몇 단어들은, 그들은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신경'이다. 이 단어는 현대까지 살아남아 일상생활에서 쓰이고 있다. 참으로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언어와 언어가 만나서 번역이란 작업을 통해 없었던 개념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개념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 서로의 문화 안에 녹아들아간다. 번역이란 접점에서 문화와 과학이 만난다. 예를 들어 소녀시대한테 에미넴이 피쳐링해주는 격이다. 전혀 이질적인 별개의 것들이 만나서 콜라보레이션 → 빅재미를 선사하는 것이다.


암튼, 일본이 저렇게 난학을 발전시키고 있을 때 우리 조상님은 왜 그렇게 하지 못했나.. 왜 하멜이나 박연같은 네덜란드인들을 써먹어보지도 못하고... 한숨 밖에 안 나온다. 


일본이 근대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토양, 난학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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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난학의 개척자 스기타 겐파쿠 - 10점

이종각 지음/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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